2020.12.16
내일 최전방중에 제일 최전방인 아주 깊숙한 곳으로 떠난다. 북한군과 불과 2km 거리를 두고 대치중인 gp다. 그 전에 꼭 하는 게 있는데 바로 연대장과의 간담회이다. 나는 관측병이라는 보직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는데, 포병에서 보병중대로 파견을 나온 거라, 가서 잘 하라고 격려차 간담회를 하는 것이다. 군생활에서 대령쯤 되는 사람과 앉아서 거의 한시간 가까이 대화할 일이 많이 없다. 연대가 여단으로 편제가 바뀌어서 지금은 새로운 여단장님과 이야기를 했다.
#호구조사
내 개인정보를 다 가지고 있나보다. 내가 다니는 학교부터 어디서 살고 무슨 운동을 좋아하는지 까지 다 알고 있었다. 좀 섬뜩했다. 그래도 GP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 자력에 특별한 결점이 없다는 뜻이라 나중에 공직에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뭔가 부탁할 것이 있냐고도 물어봐 주시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부탁할 건 없었다. 솔직히 거기서 ‘휴가좀 더 주시면...’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상급자와 대화한다는 것
나보다 많이 높은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큰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또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대가 더 큰 카리스마를 가졌을 때, 그 사람과 마주앉아서 대화한다는 것은 온 몸에서 진땀을 빼게 한다. 듣고 있을 때는 몸에 힘을 주고 허리를 곧게 펴고 모든 말에 잘 듣고 있다는 반응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인다. 말할 때는 이 타이밍에 이걸 말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되는건지 수많은 생각을 거쳐서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
#두 번째라 이제는..
이제 두 번째이기도 하고 계급도 좀 오르고 하다보니 상급자라도 너무 긴장하고 고민하면서 말하면 오히려 진정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나를 너무 낮추고 상대를 높이면 오히려 자신감이 없어 보여서 감점 요소다. 자신있는 모습이 상대에게도 신뢰를 주고 스스로도 상대 앞에서 더 편하게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이제 짬 좀 먹었나보다.
#시간이 살살
녹는다. 복귀하니 15시이다. 군대에서는 24시간제로 시간을 이야기한다. 갓 전역한 친구들이 오후 3시 30분을 굳이 15시 30분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해 주자. 어쨋든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이리 훌쩍 가 버리니 내일 휴대폰도 못 쓰는 슬픈 곳에 갈 생각에 살짝 슬퍼졌다. 아까 갈때 들었던 카더가든의 명동콜링이라는 노래가 참 좋았는데,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이제 휴대폰 일시정지한다.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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