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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생활

다시 고립. 전역 D-179

by 창문지기 2021.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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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02

 

이렇게 일기를 쓰며 항상 디데이를 적다 보니 날짜가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없애버릴까. 그래도 나중에 보고 언제 썼는지 느낌이 확 올 것을 생각하니 놔두는 것이 더 낫겠다. 뒤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오늘 일기를 쓰기 전에도 운동을 선택할지 글쓰기를 선택할지 갈등이 많았다. 일기를 쓴 건 GP 투입 이후에 한번도 내 하루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저번 여름에 아주 끔찍했던 나날을 보냈던 곳에 이 추운 겨울이 되어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섯달만에 왔으니 어색할만도 한데 매일 들락거렸던 것 처럼 너무나 익숙해서 스스로 더 당황했다.

 

#밥

올라오면 밥은 항상 맛있었다. 작은 규모로 운영되다보니 대량의 밥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서 밥이 맛있다. 물론 취사병의 역량에 따라서 좀 갈리긴 한다. 오늘 마침 군대에서 맛없기로 소문난 고등어 순살조림이 나왔는데 이것마저 맛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은 밥먹는 재미만으로도 꽤 살만한 곳이다. 다른 친구들은 라면이나 과자를 엄청 받아서 먹던데 나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살려고 노력중이다. 그런데 근무 끝나면 항상 배가 고프긴 하다. 밥만 먹고 살 순 없는걸까? 한번 아프고 올라오니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머리속에 박혀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홍삼캡슐도 꼬박꼬박 먹고 있고, 프로바이오틱스, 비타민, 우유도 잘 챙겨먹는다. 취사장 한쪽에 자유롭게 먹으라고 놓은 과일도 밥먹고 하나씩 먹어서 비타민도 보충하고 있다. 여튼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적어본다. 

 

#사지방

저번 여름에는 전기도 끊기고 전화, 사지방 다 먹통이어서 힘든 한달을 보냈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때도 나름 책도 읽고 일기도 쓰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컴퓨터를 쓸 수 있으니 이렇게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유튜브에서 음악공부도 할 수 있고 넷플릭스도 볼 수 있고. 문명이란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다. GP에 올라오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있다. 시간이 가는대로 살았으면 감사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면서 살았겠지. 어제 부모님과 전화도 하고 글도 올리고, 넷플릭스에서 '굿 플레이스'라는 드라마도 봤다. 한편에 20분 정도로 짧은 길이라서 쉴 때 가볍게 보기 좋았다. 영어회화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본 것도 있다. 영어 회화 하니 생각났는데, 요즘 영어공부 하는데 진도가 잘 안나간다. 다른 방면에서 쓰는 시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다시 영어공부를 하는 데 힘을 쏟는 쪽으로 시간관리를 해야겠다.

 

#근무

야간근무는 해가 지고 나서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 돌아가면서 선다. 여름에는 밤이 짧았다. 그래서 근무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이다. 밤이 참 길다. 아침에 일어나도 해가 안떠있더라. 근무가 많아졌다는 말이다. 자다 깨는것만큼 짜증나는것이 또 있을까? 나는 나를 깨우는 근무자들이 다들 고생하고 날 골탕먹이려고 깨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일어날 때마다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북한군과 마주보는 곳에서 좁은 공간에 갇혀서 다들 고생한다는 것을 항상 되뇌이면서 살아야 한다.

 

#그 외에 하는것들

사지방에서 영어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다. 하는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질 지경이다. 할 일들을 더 간결하게 정리해서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게 계획을 다시 세워봐야겠다. 다 하고싶은 일들이지만 지금은 위에서 말했듯이 영어가 우선이다. 같이 공부할 사람이 없다는 것과 외국인과 만날 수도 없고 전화영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혼자서 책보면서라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지. 효과가 좋을지는 일단 GP 철수 전까지 해보고 나서 판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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