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5
#근무를 서다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군대생활 카테고리의 이전 글들을 한번 읽어보면 감사할 것 같다. 초소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심심해진다. 3명이 같이 북한을 감시하고 있는데,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졸리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나 퀴즈 등 시간을 잘 녹일 수 있는 것들이다. 공부라거나 더 유익한 것들을 하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좀 힘들다. 셋이 서있는데 한 명만 책을 들여다보면서 공부하고 있으면 다른 두 사람은 얼마나 뻘쭘하고 힘들겠는가. 게다가 책을 보고 있으면 전방 감시도 못해서 임무수행이 안된다. 내가 한번 눈치 없이 공부하려고 책을 슬쩍 들고 갔다가 꺼내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이야기
군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다들 살아온 인생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다르다. 그래서 한 명씩 이야기를 듣다 보면 꽤 재미있다. 누구는 형한테 엄청 맞고 살았는데 어느 날 형과 대판 싸워서 그 이후로 인정받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무덤 파는 알바나 도박장에서 알바를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군대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성에 관한 주제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성격은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항상 조금 미안했다. 내가 이야기를 듣고 그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해서였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구성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 같은데 들으면 빠져들게 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부럽기도 하고 어떤 노력을 해서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오늘 야간근무에서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어서 왠지 이런 것들을 쓰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무서운 이야기..
심심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무서운 이야기이다. 특히 그 시간이 밤이라면 말이다. 전방초소는 조명도 없어서 매우 어둡다. 무서운 이야기를 할 완벽한 환경인 것이다. 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친구가 내 후임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잔뜩 했었나보다. 전에 후임에게 생활관에서 공포영화를 보자고 했더니 식겁했던 기억이 나서 벌써부터 웃음이 났다. 난 나쁜 선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이 웃음은 인정해주면 좋겠다. 여하튼 그래서 나한테도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무서운 이야기. 옷장 귀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아이와 엄마가 같이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옷장이 하나 있었다. 붙박이장이라서 제거할 수도 없는 그런 옷장이었다. 이사할 때부터 집주인이 경고를 단단히 했는데, 그 내용은 옷장을 절대로 열어보지 말고 그 방에 아들을 오래 혼자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일단 옷장 바깥을 벽처럼 도배를 해버렸고 그 방을 아들에게 주었다. 아마도 옷장이 있는 줄도 모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는 일하는 시간이 꽤 길어서 아들은 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아들이 어느 날 자려고 누우니 벽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벽에 귀를 가까이 대고 '누구 있어요?'하고 물어보니 조용했다. 다음날 아들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벽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아들은 이번에는 방식을 바꾸어서 누구 있으면 한번 두드리고 없으면 두 번 두드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벽 안쪽에서 한번 '똑'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별을 물어보니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애매하게 '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이런 방식으로 아들은 벽 안의 정체모를 무언가와 여러 가지 소통을 하면서 지냈다. 어느 날 아들은 궁금한 게 생겨서 벽 앞으로 가 물어보았다. '혹시 안에 몇 명이나 있어요?' 그러자 갑자기 안에서 '두두두 두두두 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려서 아들은 뒤로 꼬꾸라졌다. 이때 포인트는 주변에 있는 책상이나 빈 벽을 세게 마구 두들기는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듣는 사람들 깜짝 놀란 표정이 일품이다.
그래서 나도 뭐라도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부대에서 불침번 서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시간이 늦어져서 다음에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건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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