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0
마음을 정리하고 일기를 쓴다. 하루를 잠시 돌아보았다.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나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걸 잡아채려고 노트를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머릿속이 제일 복잡해진다. 하나의 일에 집중할 때 가장 맑은 상태가 된다. 이젠 컬러링 북을 사서 색칠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태극권이나 요가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 것 같다. 전역하면 무도(武道)를 하나쯤은 익혀도 괜찮을 것 같다. 어제 부모님께 전화를 하니 내가 이것저것 관심 있는 게 많은 것도 아빠를 닮아서라고 한다. 아빠가 현실에 맞서서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긴 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해서 잠이 든다. 따뜻한 장판 위에서 앉아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책에 온전히 집중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 본 것이 중학생 이후에 있을지 의문이다. 글을 읽을 때 그 글에 흠뻑 빠진 경험은 고등학교 비문학을 공부하면서 잃어버리게 되었다. 내용에서 감명을 받지만 읽고 난 이후에는 생생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메모하면서 읽기도 해 봤지만 읽기 자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이 되는 느낌이었다. 책에 일점 집중. 책을 집중해서 읽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2021.01.31
새벽에 함께 영화를 봤다. 코로나로 모이기 힘든 시기에 군대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 햄스워스 주연의 '익스트랙션'이라는 영화였다. 경쟁 세력에게 납치당한 마약왕의 아들을 구출하는 용병의 내용이었는데 난 중간에 졸려서 그냥 잤다.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게 아니라서 크게 상관은 없지만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은 액션씬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들더라. 여하튼 사지방에 앉아서 혼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는 볼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더해지니 나도 같이 반응하게 되었고 불을 끄고 보니 영화관에 온 것처럼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자러 나오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니 난 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왠지 흐뭇해지기도 했다. 여기서는 매일 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모두가 항상 지루함과 매너리즘에 노출되어 있다. 가끔 하는 친구나 부모님과의 통화, 맛있는 밥, 드라마나 영화 보기 아니면 책 읽기 정도가 내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휴가 가서 혹은 전역하고 나서도 잘 기억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트람을 외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훈련을 하니 확실히 내가 너무 많은 생각들을 빠르게 처리하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 보였다. 내 장기였던 여유 있는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
2021.02.01
실수를 좀 한 날이었다. 원래 후번초 근무자에게 인수인계해야 할 사항을 까먹었다.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이제와서 이런 실수를 한다는게 멋쩍었다. 후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나도 참 많이 빠졌다. 다음달이 병장이니 이제 조금만 참으면 군생활도 끝난다. 정말 1년이 빠르다. 기다릴 때는 그렇게 안가더니 지나고 보면 쏜살같다. 부모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는데 내가 이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묘하다.
우리 막내가 조부상을 당해서 먼저 철수하게 되었다. 그 마음속을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일찍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기억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심결에 괜찮냐고 물어보고 할아버지와 많이 친했냐고 물어봤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별로 슬프지 않았다. 함께 있었던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자주 나와 놀아주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 기억이 없다. 그 때는 눈물도 나지 않는 나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괜찮다. 다만 옛날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막내도 비슷한 상황일지, 아니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서 속으로 슬픔을 삼키고 있을지 그게 궁금했다. 나를 위해서 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마음도 무뎌지겠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처음엔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아무쪼록 마음을 잘 정리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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