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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생활

제설. 전역 D-199

by 창문지기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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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시작
200일이 넘어간 기념으로 일기처럼 글을 조금씩 올려 보려고 한다. 아직 전역까지 많이 남았으니 글을 써서 쌓아가면 나한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내가 올리는 글을 보시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굳이 전화 하지 않아도 아실 수 있을테니 일기를 올린다는 생각은 좋았던 것 같다. 물론 전화하는 것을 더 좋아하시겠지만. 자주는 못하더라도 전화도 하고 있다.
#아침에 웬 카톡..?
친한 친구들이 다 군대에 있는데 오늘 아침 톡방에 카톡이 많이 울려서 밖을 보니 눈이 오고 있었다. 내용들을 보니 다 제설각이라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눈덮인 넓은 연병장을 보니 내 머리속도 새하얘졌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눈은 꼭 주말에 온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 제설 시작
역시나 밥 먹은 후에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이 들려왔고, 눈삽, 너까래, 싸래비 삼종세트가 가지런히 놓여진 사열대에 서서 눈을 맞으며 제설 준비를 했다. 비니를 쓰고, 장갑을 끼고, 코로나니까 마스크도 꼭 쓰고 추운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분주히 움직였다. 눈이 어면 눈싸움을 꼭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다가 같이 눈을 맞는 사람도. 그럼 눈삽은 제설도구가 아닌 무기로 변하곤 한다. 보통 삽보다 세배는 커서 눈을 퍼서 뿌리면 싸다구를 맞은 것 같이 아리다.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할만 하다.
# 눈 쌓인 바닥을 보면
제설을 할 때 땅을 보면 세가지가 보인다. 눈이 쌓여있는 부분, 눈을 치우고 흙이 드러난 부분, 마지막으로 눈과 흙의 경계선이다. 나는 흰 눈을 보고있으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너무 하얘서 빨려들어갈 것 같다. 흙부분은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거의 땅을 긁듯이 눈삽질을 하면 흰색은 흔적도 없는 적갈색 흙이 드러난다. 경계부분은 보고 있으면 묘하다. 하얀 눈이 너무 깨끗해보여서 더럽히고 싶지 않다가도, 얼른 끝내야지 싶어서 다시 달려들어 열심히 너까래를 밀고 있다.
#노래
내리는 눈을 보며 백예린의 tellusaboutyourself 앨범의 음악들을 듣고 있으니 참 잘 어울린다.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다. 노래가 포근하게 내 주변을 감싸는 옷이 되어주는 것 같다.

tellusaboutyourself -백예린

백예린의 새 앨범이 나왔다. 유튜브를 보면서 티저 영상을 발견하고 신곡이 나온줄 알고 허겁지겁 들어가서 봤던게 그저께였던 것 같은데. 어제 뭐한다고 이걸 알아채지 못했는지. 시간이 흘러

pdchoi.tistory.com


#끝
끝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어제 운동도 해서 몸은 뻐근하지만 점심을 먹고 따뜻한 침상 위에 누워서 폰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내가 보기에도 꽤 편안해보인다. 이제 오늘 하루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지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눈이 생각보다 참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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